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재능수업(일본어 수업) 김경란 집사>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재능수업(일본어 수업) 김경란 집사>
아침 8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예배 준비로 분주합니다. 어쩌면 예배를 섬기는 많은 손길은 이미 교회 문턱을 넘었을 시간이지만, 이런 주일 아침 풍경이 우리 가정에 자리 잡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25년 후반기, 내일플러스 강좌에 일본어가 포함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드디어 나도 하나님께 받은 재능으로 봉사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와 함께, ‘매주 빠짐없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쳤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주보를 함께 보던 남편이 “이제 드디어 당신이 봉사할 때가 왔네요. 어서 담당 집사님께 전화하세요.”라며 내가 전화를 걸 때까지 독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어 재능기부. 첫날부터 활기찬 중학생 다섯 명, 듬직한 고등학생 한 명, 그리고 중학생 자녀를 둔 신실한 집사님 한 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이건 뭐라고 해요?”, “이건 어떻게 말해요?” 질문이 쏟아지는 ‘더룸3’의 일본어 교실은 호기심과 열정으로 예정된 진도보다 훌쩍 앞서가고 있습니다. 이 작은 배움이 장차 하나님 나라 확장의 씨앗이 되길 기도하며 매주 감사한 마음으로 수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새벽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던 부모님. 기도 소리에 새벽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언제나 나를 위해 무릎 꿇고 계신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은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기도 덕분에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지켜주시고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믿음을 품고 자랐습니다. 결혼 후 가진 것 없어도 두려움 없이 일본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어디서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도쿄에서의 유학 시절은 ‘생활’이라기보다 ‘생존’의 연속이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 많은 선교사님 부부를 통해 하나님의 참사랑을 경험했고, 부족함 속에서 오히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남편의 취업이 결정되고 가족이 함께 귀국한 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매주 주일마다 어떤 교회에 가야 할지를 두고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았습니다. 등록한 교회에서 세속적 가치관이 스며든 모습을 보며 “이 교회는 아니야, 저 교회도 아니야.” 하며 예민해졌고, 점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실까? 이런 교회의 모습을 언제까지 용납하실까?’ 그런 의심이 깊어만 가던 어느 주일 아침, 성서 지역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찾았던 내일교회 예배에서 잃어버린 평안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등록한 뒤에도 예친원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도, 말씀도, 봉사도 멈춘 채 살아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주보에 함께 끼인 봉사 지원서를 볼 때마다 ‘나는 바쁘니까, 집이 멀어서, 다음에 해야지…’라며 수년째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그런 핑곗거리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타지 근무’라는 이유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놀랍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근무지를 대구 인근의 학교로 옮겨주셨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작은 봉사로, 주의 날이 기쁩니다. 예친 활동에도 함께할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의 기도로 심어진 믿음의 뿌리가 이제야 다시 움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서툴고 부족하지만, 작은 일에 순종하면서 매 순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며 살고 싶습니다.
담당 집사님께서 간증문을 부탁하셨을 때, 어린아이 같은 제 믿음이 드러날까 부끄러웠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성장의 기회라 믿고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 속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 은혜가 아닌 때가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따라 저도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린도전서 15장 10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