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두고 간다. 그러나 또한 모든 것을 갖고 간다. <소망4교구 3413 홍인식 장로>
모든 것을 두고 간다. 그러나 또한 모든 것을 갖고 간다. <소망4교구 3413 홍인식 장로>
시골 중에서도 깡촌, 깊은 산골에서 조부모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태어났으나, 불행스럽게도 그분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다. 돌 즈음 부모님의 등짝에 업혀 도시의 변두리에 터를 잡고, 손 참 많이 가는 개구쟁이 시절을 보냈다.
숲길의 사초(莎草)를 묶어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고, 물웅덩이를 만들어 빠지게 하고, 이웃집 또래들을 울리고 괴롭혀서 '인식이 엄마! 얘 좀 보세요!' 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던, 대책 없어 보였던 어린 시절, 결코 가난하지도, 유복하지도 않았던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다.
"은행알"이 배정해준 대구중학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사고로 사회보장이나 장래 보장은 사고가 연일 터지고 사회적 이슈꺼리였던 '곗돈'이라는 것 외는 없었던 시절, 인문계 진학은 아예 포기하고 그렇게 신암동에 있는 "D"공고를 갔다.
그 사이 병석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 때문에, 당시 특별한 신유 은사로 집회가 잦았던 현신애 권사를 찾게 되고, 60년대의 안지랭이는 시골의 자연부락으로, 좁은 골목길에 초가집도 따문따문 제법 있던 시절, 골목 안의 작은 교회 '대명교회'를 알게 되었다.
사탕 준다고 가고, 성경학교 출석상 받으러 가고, 성탄절 새벽송 따라 다니던 꼬마가, 중·고등부 임원으로, 회장으로 믿음은 없었지만 흉내를 내면서, 그렇게 교회 안에서 세상 흉내 내지 않고 살아내려고 가식도 부려보고, 거짓말도 해 봤지만, 세상 또한 만만치 않아서 참 많은 회개거리를 안고 살아왔다.
나그네 길의 세월이 내일모레면 칠십에 이르게 되고, 머리는 반백이 되었고, 주변의 친지와 친구가 먼저 가기도 하고,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이 75.1세라는 데이터들을 접하다 보면, ‘모든 것을 두고 간다. 그러나 또한 모든 것을 갖고 간다’는 설교가 마음에 와 닿는다.
입술을 통한 믿음의 고백이 내 삶의 현장에서 마음의 생각과 뜻, 행동과 일치되도록 부단히 힘쓴다. 암기한 말씀들이 입술을 통해 허공으로 날리는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다짐도 해 본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롬 10:10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 잠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