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 <2224예친 장미은 집사>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 <2224예친 장미은 집사>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저의 50대는, 제가 옳다 생각했던 것들, 삶에 대한 기준들,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무언가 제 내면의 저변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무너짐이나 깨어짐이 아니라 그것은 전환이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아진, 그래서 갑자기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졌기에 그것은, 이제껏 붙잡았던 것들에 대한 놓음이며 나의 자랑이라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헛됨의 인식이었고, 이제껏 고수했던 삶의 방식과 사고 방식에 대한 변동이었습니다. 새로워지고 싶었고 이제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좁고 빈약한 사람 관계에서 오는 이제까지의 메마른 결핍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말할 수 없이 충만한 관계를 갈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예수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너무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 갈망은 평생을 함께 할 사람들을 좀 붙여주시라고 기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래도록 소망하고 기도했던 그것이 내일교회에 와서 채워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처음 만난 예친이 그토록 이질감이 없이 하나같이 마음이 맞을 줄도 몰랐습니다. 나보다 두 살밖에 안 많은데 대모같이 든든하고 넉넉하고 배울 게 많은 엄마(순장님은 싫어하실지 모를 표현이지만^^)같은 순장님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새롭게 만난 예친원들도 볼매(볼수록 매력있는)일 줄 몰랐습니다. 봉사의 자리에서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리만치 비슷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숙해진 또래와 단둘이 해외여행까지 가게 될 줄 상상조차 못했었습니다.
사랑의 도시락, 오병이어, 로이모스에서의 봉사는 제 일상을 더 다체롭고 활력있게 채워주었고, 102, 201, 301과정은 또 다른 만남, 또 다른 나눔들이어서 교회에 더 빨리 적응하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401 과정은 담임목사님과 함께 하는 것이어서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목사님 특유의 소탈함과 사람에 대한 관심은 이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해야 할 말씀들과 과별 요점을 잘 정리해서 다 말씀하시고도 한 사람 한 사람 근황과 소감, 질문들을 듣고 나누는 부분은 군더더기 없이 자로 잰 듯 깔끔하면서도 나눔도 모자람이 없어서 그 진행의 탁월함이 좀 놀라웠습니다. 덕분에 함께한 분들의 생각도 듣고 삶도 엿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에서 자기 것을 나누는 것이 섬김이라 생각되는 것은 그 내어놓음을 통해 누군가는 답을 찾을 수 있고 누군가는 위로를 얻고 누군가는 도전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일 예배드리고 예친 모임 하고 401까지 하는 것이 벅찬감도 없지 않지만 주일 설교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목사님 말씀과 사람들과의 나눔은 즐거운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과제가 바쁜 일상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훈련이고 삶의 시간을 아끼는 길임을 알기에 오늘 아침에도 시간을 쪼개 퐁당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늘에 충실히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인생 후반기는 지금 현재 예수님과 교회안에서 충만합니다! 할렐루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히 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