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 것 전혀 없네 <온유 5교구 1524 서혜진 집사>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 것 전혀 없네 <온유 5교구 1524 서혜진 집사>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교회 공동체가 삶의 전부이셨던 부모님, 시간 공간 재정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의 것이랄 게 없이 우리의 모든 것이 교회의 것이었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저는 교회가 곧 집이었고 교회 공동체가 곧 가족이며 친척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풍성한 마음으로 자라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자신들의 전부를 다하셨던 작은 교회 공동체가 커져가는 동안 가정은 안팎으로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만났고 그 어려움들을 감당하시다 끝내 젊은 나이 아버지께서 소천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남겨진 어려움을 감당하며 그 길에서 성장한 저는 하나님께 대한 몇 가지 질문과 교회에 대한 어려운 마음 내지는 숙제를 안고 자라게 됩니다.
믿음의 삶을 사노라 하셨지만 아버지께서 사신 삶의 (눈에 보이는 현실의) 결국과 사별 후 더더욱 고되게 사시며 모교회에서 어렵게 사역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일이 성숙하지 못한 제게는 큰 낙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까지 살아? 자식 고생하는건 안보여? 믿는다는 사람들 아무도 그렇게까진 안살잖아 봐봐 왜 우리만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 존경하는 부모님이었지만 감당하기 힘든 세월들 속에서 저는 그저 한없이 무너진 마음이 되었고 부모님께서 순전한 마음으로 전부를 드려 헌신하신 삶에 존경과 지지를 보내기보다 무언가를 향한 누군가를 향한 실망과 분노 또 용서하지 못한 감정들로 곪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진학 후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다시금 성경을 공부하며 하나님과 막힌 담이 헐어졌지만 차마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못한 가운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머니 역시 젊은 나이에 소천하시게 되면서 지지하고 인정해 드리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와 자책 가운데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아무도 찾지 않는 나에게 누가 찾아와 주었는데 내가 누구 때문에 하나님 믿게 되었는데..” 하시며 목놓아 우시는 교회 안팎의 이름 없는 분들 사이에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을 그 삶을 분명 하나님께서 아시는구나 모를 리가 없으시구나 그것이면 된다시던 말씀이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제야 똑똑히 선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후 교회 공동체에 대한 마음은 ‘내 감정보다 그저 섬김의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내가 할 도리는 그것밖에 없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나는 거기에만 집중하면 된다’에 이르게 되고 이후 다시 부족하나마 모교회 공동체를 다시 섬기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부어주시는 변방에서의 은혜들 광야에서의 은혜들을 맛보아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와중에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언젠가는 고향을 떠나보면 좋겠다. 모교회에서 장로님의 딸로 전도사님의 딸로서 아닌 그곳을 벗어나 하나님 앞에 순전히 나로 존재하던 시절의 깊음과 충만함을 다시 누리고 싶다는 갈망이 있어 지속적으로 기도하였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다고 기도가 바뀐 어느 날, 대구로 오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대구는 제 생각보다 낯선 도시이고 50주년인 내일교회에도 1년도 못된 채 적응 중이지만 목사님 말씀을 통해 영혼을 소생케 하시고 지속적으로 말씀을 상고하게 하시며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셨기에 이제도 앞으로도 저를 또 우리를 놓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시리라 믿습니다.

